[윤동주] 시인ㆍ독립운동가,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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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인ㆍ독립운동가,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by cozy corner 2018. 11. 18.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가신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했던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함으로써, 일제의 강압에 고통을 받고있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철인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들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서 반영이 되어있습니다.



윤동주는 독립투쟁의 일선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투사도 아니었고,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시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은 한낱 오락에 불과하였고, 공부나 시도 생활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시, 삶, 등을 일치시키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시 정신은 어느새 투사 못지 않게 치열한 바가 있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독립을 한 나라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죽음의 나락에 빠진 민족을 사랑하였고, 자신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한 몸을 민족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습니다. 윤동주는 (1917.12.30~1945.2.16)는 식민지의 암울했던 현실 속에서 민족에 대한 사랑, 독립의 절절한 소망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견주어서 노래하였던 민족시인입니다. 시인 윤동주는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윤동주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아주 큰 마을 명동촌에서 28년이라는 생애의 절반이었던 14년을 보냈으며, 아름다운 자연들을 벗삼아서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눈 여겨 볼 것이 있는데 그의 어린 시절의 아명입니다. 윤동주의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뜻으로 아버지가 지어주신 해환이었습니다. 아버지 윤영석은 자식들 이름에 해와 달, 별을 차례로 붙이며, 각각 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윤동주라는 이름의 석자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러한 그의 아명 속에서 이미 잉태가 되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로인해 윤동주의 성장과정에서는 빼놓을 수 없던 것이 바로 기독교의 영향이었습니다.



명동교회의 장로로 도량이 넓으셨던 할아버지 윤하현과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윤동주는  유아세례를 받으며, 어릴 적부터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의 기독교정신을 배우며 자랐다고 합니다. 또한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신 외삼촌 김약연의 영향 아래에서 일찍부터 민족의식에 눈뜰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자연 아래에 기독교신앙, 민족주의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져 있는 기름진 토양 속에서 풍요롭게 자라났습니다. 게다가 문학 방면에는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솥에서 뛰어내려 숯불에 내려앉은 격"이라는 문익환의 회고처럼 그들이 편입을 한 광명학원은 대륙낭인 출신이었던 일본인이 경영한 친일계 학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선택을 하였던 것은 상급학교 진학시의 편의를 위해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명중학에 재학했던 2년 동안 윤동주는 동시에 더욱 더 몰두하게 되었고, 연길에서 발행되던 월간잡지 [가톨릭소년]에 모두 5편의 동시를 발표하였습니다. 이후 광명중학을 졸업한 윤동주는 의과 진학을 고집하셨던 아버지의 만류를 급구 뿌리치며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연희전문에서 윤동주는 최현배 교수의 조선어 강의, 손진태 교수의 역사 강의를 들으면서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다시 재확인하였고, 이양하 교수의 문학 강의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문학관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윤동주는 4년간 나름 시세계가 영글어간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참담하였던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는 과정이었고, 거기에 맞서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과정이었습니다. 1941년 그 모든 내적인 방황, 자신을 짓눌렀었던 역사의 무게를 시로 승화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무서운 시간)라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다시 확인하면서, 나라 잃어 (간판 없는 거리)의 "모퉁이마다/자애로운 헌 와사등에/불을 켜놓고" 어진 사람들의 손목을 잡으며 보듬어주는 따뜻한 민족 사랑을 한 편의 시로 녹여 나갔습니다. 졸업을 앞두었던 윤동주는 그 때까지 써놓았던 시중에서 18편을 뽑으며 여기에 (서시)를 붙였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었습니다.



윤동주의 유해는 3월 6일 문재린 목사의 집례로 북간도 용정 동산의 위치하고 있는 중앙장로교회 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그 해 6월에는 그의 무덤 앞에서 집안 사람들의 정성으로 '시인 윤동주지묘'라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윤동주의 유시는 해방이 된 후, 연희전문 시절에 절친한 벗이었던 강처중이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던 유고와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었던 필사본 시집, 등 31편의 시들을 모아서 1948년 1월 정지용의 서문, 강처중의 발문을 붙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정음사에서 출간하게 되면서 이윽고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1968년 11월에는 유작 (서시)가 새겨져있는 (윤동주 시비)가 모교인 연세대 교정에 건립이 되었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하면서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일제강점기였던 그 시대에 태어나 민족의 사랑을 일깨워주었던 한 사람으로, 많은 후인들에게 깊은 영감과 깊은 애국심을 전달하였고 자신을 빛냄으로써, 오늘날 후인들을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허름한 벌판과 아무것도 없는 무방비였던 시대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늘과 바람, 별, 시였습니다. 왜냐하면 땅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었지만 하늘을 바라보면 빛나는 태양과 희망을 안겨주었고, 바람이 일면 이 땅에는 가진게 너무나도 많았으며, 밤이 되면 하늘에 떠있는 별이 너무나도 잘 보여 어둠 속에 그을렀던 한적한 구석이 빛나는 별로 인해 다시금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고, 윤동주라는 사람으로 인해서 시가 더 밝게 빛났기 때문입니다.



영화 <동주>가 있습니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들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였던 시절에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가 있습니다. 시인을 꿈꾸고 있던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서 일본 유학 길에 올랐던 두 사람은, 일본으로 건너간 뒤에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을 하게 되었고, 절망적인 순간에서도 시를 쓰면서 이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갑니다. 어둠의 시대,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깊고 깊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동주>라는 영화를 보며 역사에 대한 인지와 그 시대에 아픔이 담겨있던 윤동주 시인의 역사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흑백으로 조성되어있습니다. 배경이 흑백으로 되어있는 이유는, 그 시대의 어두웠던 배경과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당시의 쓸쓸하고 아팠던 배경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흑백으로 조성되어있는 것입니다.



특히 윤동주 역을 맡은 강하늘은 그 시대의 암울했던 분위기와 자신(윤동주)을 잘 나타내었고 윤동주의 역할 그 자체가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입을 도왔고, 그 시대의 배경을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자신이 바라고자 했던 희망과 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잘 표현해주어 더욱 극찬을 받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를 흑백으로 만든 것에 대해서 컬러는 윤동주를 현재로 불러오는 듯한 느낌을 들게하는 반면 흑백은 현재의 우리가 그 시대로 가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윤동주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동주와 몽규는 한 마을에서 태어나게 된 동갑내기 사촌지간입니다. 모든 것들이 억눌려서 억압되었던 일제강점기 속에서 동주는 시인을 꿈꾸고, 몽규는 독립운동가가 됩니다. 감수성이 풍부하였던 동주는 신념을 위해서 그 당시 거침없이 행동하는 몽규를 가장 가까운 벗으로 여기면서도 넘지 못하는 산처럼 느끼게 됩니다. 두 사람은 창씨개명을 요구하는 조선을 떠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되고, 몽규가 독립운동에 매진을 하게 되면서 동주와의 갈등도 심히 깊어집니다.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데려다가 일본군으로 강제징용하자 유학생들은 이를 피하려 합니다. 어느 날 몽규는 일본군에게 발각이 되었고, 몽규는 동주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을 해보지만 동주는 첫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서 몽규를 먼저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동주와 몽규는 일본군에게 붙잡히게 되고 후쿠오카 감옥에 투옥되어서 생체실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그 시대에 억압되었던 일제강점기 속에서 두 청년의 청춘을 이야기해주는 영화입니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는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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