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세종대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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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처 몰랐던 '인간 세종대왕의 이야기'

by cozy corner 2018. 11. 2.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였던 시대를 말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안정이 되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아왔던 시기였습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들이 양성되었고, 훈민정음의 창제를 도입함으로써,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 음악,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매우 수많은 사업을 통하여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일들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세종이었습니다. 


세종은 보통 학문적인 능력이 무척 뛰어나고 글공부를 굉장히 좋아했던 사람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운동은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몸이 비대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종은 광화문에 놓여진 동상이나 책에 실린 그림으로 보는 모습보다는 실제로 훨씬 풍채가 좋은 분이셨을 것입니다. 요즘도 비만을 떠올리면 과도한 육식으로 축적되는 콜레스테롤이 많이 떠오르게 되는데 세종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고 고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터라, 그로인해 풍채가 좋았던 것입니다. 고기를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고기가 없으면 병이 났고, 기력이 떨어질 정도로 좋아하셨다고 하니 역사 속에 기록되어있는 세종의 고기 사랑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서 '육선' 이라는 단어가 검색되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합니다. 선왕인 정종이 전사한 후의 고기를 안 먹는 세종을 보고는 아버지 태종이 감동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의 고기를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예를 갖춘다고 고기를 마다했다는 사실만으로 아버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종실록』 9권, 2년 8월 29일 세번째 기사에 나온 기록, "주상이 젊었을 때부터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하였으니, 이제 초상을 당하여 소찬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내가 어찌 어여삐 보지 않겠는가."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효심이 깊었던 세종은 예법에 따라서 상중에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고기를 먹지 못하여 금단현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결국 온몸이 허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다시 먹게 됩니다. 특히 신하들은 임금이 기력이 없으시거나 나랏일로 수심에 빠질 때마다 고기를 먹으라고 청합니다. 어떨 때 한번은 고기반찬 투정도 하였다고 합니다. 임금 밥상에 고기가 올라왔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백성들이 먹는 고기보다 못했다는 이유로 고기반찬 투정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종은 본인만 먹는 것이 아니라 남한테도 고기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이 제일 아꼈던 황희가 있었는데 황희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없어지자 다른 음식들은 다 제치고 고기를 하사하셨던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만 봐도 세종이 얼마나 고기를 좋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못말리는 고기 사랑 덕분에 세종은 젊은 시절때부터 당뇨나 심근경색,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먼저 찬란한 학문적 업적들로 인해 매우 고고한 선비와 같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세종은 영토 확장이나 수복에 있어서 매우 과감하였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남자 중의 남자였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4군 6진은 조선 세종 때 여진족을 물리치고 개척한 지역을 말합니다. 4군은 압록강 상류로 최윤덕이 확보한 지역이었으며, 6진은 두만강 유역으로 김종서가 개척한 것입니다.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잇는 현재와 같은 국경선을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신기전이라는 화포를 만들었으며, 김종서를 시켜서 북방의 여진족을 몰아내게 하고 4군 6진을 개척하였습니다.



남쪽으론 왜구를 격파하였던 정복왕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세종은 조선의 임금들 중에서 영토를 넓힌 유일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해외 정벌에 나선 것은 세종 때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왜구의 본거지, 쓰시마 섬(대마도)을 토벌한 것입니다. 왜구는 고려 때부터 극성을 부려 세종대에 들어서부터는 노략질을 일삼는 등의 악명이 높은 것으로 자자했습니다. 결국 태종은 이종무 장군에게 병선 227척을 주면서 대마도 정벌을 명했습니다. 신하를 시켜서 대마도를 정벌하라는 명령서로 「정대마도교서」를 내리게 됩니다. "대마도라는 섬은 본래 우리나라 땅인데 다만 험하고 궁벽하며 협소하고 누추한 곳이므로 왜노가 웅거해 사는 것을 들어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에 감히 개처럼 도둑질하고 쥐처럼 훔치는 흉계를 품어서, 경인년 이후로부터 변경에서 방자하게 날뛰기 시작하여 우리 군민을 전사하고, 우리 백성의 부형을 잡아가고, 가옥을 불태운 탓에, 고아와 과부들이 바다 섬 속에서 울고 헤매지 않는 해가 없었다. 이에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들이 팔뚝을 걷어붙이며 분통이 터져서, 놈들의 살과 살가죽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지가 몇 해가 되었다." 라는 말로 강한 카리스마가 담겨 있는 과연 태종다운 글이었습니다. 그에 대를 이어 세종도 역시 강력한 경고를 보내게 됩니다. "만일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내게 항복하지도 않고, 여전히 도적질이나 하려는 흉계를 품고 계속 섬에 눌러 있는다면, 마땅히 크게 병선을 준비하여 군량을 가득 싣고 가서 온 섬을 에워싸고 공격할 것이니, 시일이 오래되면 반드시 그 속에서 자멸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또 용감한 군사 10만 명을 뽑아서 곳곳에 들어가게되면, 주머니 속의 물건이 어디로 가겠는가. 반드시 부녀자, 어린것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땅에서는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뿐더러, 물에서는 고기와 자라의 배를 채울 것이 의심 없는 일이다. 그러니 어찌 깊이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여기에서는 화가 오고 복이 되는 길이 뚜렷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아득하여 추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인 태종과 피를 물려받은 세종, 우리나라와 우리의 민족들을 위협하는 자들은 용서치 않는 기개가 매우 넘치는 군주들이였습니다.



한편 세종에게는 인간적인 고뇌도 있었는데, 세종에게는 자식이 많았습니다. 무려 18남 4녀를 두고 있었던 아버지였습니다. 왕의 자손들은 누구보다 편하게 살고 잘 먹고 잘살기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왕족으로서 매우 힘든 점들도 많았습니다. 배다른 형제들끼리 권력다툼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이었고, 이런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했던 세종은 소문난 역술가였던 홍계관을 불러들여 자식들의 사주를 물어보았답니다.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들이 걱정되셨던 것이었습니다. 사주를 보던 홍계관은 이상하게도 다섯째 왕자 광평대군의 사주에 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광평대군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였고 성품이 너그러워 세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터라 굉장히 불안해했습니다. 홍계관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다섯째 왕자는 굶어 전사하게 될 사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종은 이에 말을 듣고 정말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그의 말을 부인했지만 어느덧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광평대군에게 전답 500석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한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밥을 먹던 광평대군이 생선을 넘기다가 목구멍에 가시가 박히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어찌보면 흔하게 일어나기도 하는 일입니다. 별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도 하곤 하지만 어떠한 처방에도 가시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밥도 못먹고 물도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광평대군은 시름시름 앓다가 정말로 굶어서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사한 것이 광평대군의 운명이었던 것이었는지 그렇게 총애하고 아끼던 다섯째 아들을 먼저 보내게 됩니다. 그렇게 세종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불행을 겪었다고 합니다.



비대하였던 몸으로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으며,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 또한 며느리의 동성애 문제로 매우 골치가 아팠던 세종의 모습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세종의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 세종이 겪었던 아픔이었고, 백성들의 대한 깊은 사랑, 학문적 열정, 굉장히 뛰어났던 정치력으로 우리 역사 속에 길길이 남을 훌륭한 업적을 이루신 성군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인간 세종으로써 우리들과 다를바가 없는 무수한 일상적 고민들로 한세상을 사셨던 평범한 인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흔히 위인을 떠올리면 인간을 넘어서고 초월한 위대하신 존재라고 느끼셨던게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듯이, 희로애락이 존재하고 모든 것은 인간들이 하얀 도화지에 그려지는 그림일 뿐 결국은 환상이 가득하고 불완전하기에 모든 것을 실행시키고 인간은 인간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종도 우리와 같은 '인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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