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독립운동가 - 3.1만세운동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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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독립운동가 - 3.1만세운동의 상징

by cozy corner 2018. 12. 5.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의 만세시위를 벌이고 주도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게 되었고,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휴교에 들어가자 자신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서 만세시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씨는 일본 헌병들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었고, 집마저 불탔으며, 유관순 열사는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영명학교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끌려온 오빠 유관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후의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해서 방광파열로 순국하였습니다.



거사를 앞둔 3월 31일 유관순 열사는 지령리 매봉에서 내일의 만세시위를 약속하였고, 다짐하는 봉화를 올렸습니다. 정오가 되자군중들 앞에서, "여러분 우리에게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놈들은 우리 나라를 강제로 합방을 하고 온 천지를 활보하고 다니며 우리 사람들에게 가진 학대와 모욕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나라 없는 백성으로 온갖 압제와 설움을 참으며 살아왔지만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지금 세계의 여러 약소민족들은 자기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어서고 있습니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라고 열변을 토해내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이러한 연설은 군중들의 애국심을 한층 고조시켜 장터는 이들이 내뿜는 독립의 열기들로 뜨겁게 달아 올랐습니다. 이어 아우내 장터의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유관순 열사와 함께 만세 시위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던 조인원이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함으로써 약식의 독립선언식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군중들은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앞세웠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며 갔습니다.



열 여덞 꽃다운 나이에 유관순 열사는 천안헌병대에서 온갖 갖은 고문들을 받으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시위 주동자라고 말하면서 죄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석방하라고 호통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공주감옥으로 이송이 될 때에는 군중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마다 독립만세를 연이어 고창하면서 불굴의 독립의지를 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법정에서, "나는 한국사람이다. 너희들은 우리 땅에 와서 우리 동포들을 수없이 없앴고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없앴으니, 죄를 지은 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우리들은 너희들에게 형벌을 줄 권리는 있어도 너희들은 우리를 재판할 그 어떤 권리와 명분도 없다"고 말하면서 일제의 재판을 거부하는 당당함, 민족적 기개를 잃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감옥에서의 온갖 탄압, 고문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옥중 만세를 불렀으며, 특히 1920년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이했을 때는 수감 중이었던 동지들과 함께 대대적인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유관순 열사는 지하 감방에 감금이 되었고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들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인한 장독으로 1920년 9월 28일, 서대문감옥에서 18살의 꽃이 피기도 전에 꽃다운 나이로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정부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많은 군중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였고, 일제의 고문과 압박, 그 시대의 나라 없는 설움을 토해내며 자신의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군중들 앞에서 열변을 토해내고 강한 애국심을 한층 고조시키며 처음부터 끝까지 애국심을 놓지 않았습니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현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유관순 열사 외에 무수한 애국심을 자랑하고 꽃다운 나이에 떠나신 분들 덕분에 우리들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 힘들었던, 제일 아프고 아팠던 시대에 태어나 우리 민족과 우리 나라를 잃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용기와 희망을 다시 되새김으로써, 우리들은 나라를 지켰고, 나라를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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