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2)
월드/역사

역사란 무엇인가 (2)

by cozy corner 2018. 10. 28.

시대는 선사 시대로,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시대를 말합니다. 문자 기록이 전혀 아닌 남겨진 물건이나, 건축물, 등의 흔적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반면, 문자로 쓰여진 글이나 책과 같은 기록물에 의해 과거를 알 수 있는 시대는 바로 '역사 시대' 라고 합니다. 보통 우리 민족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아주 먼 옛날 구석기 시대에서는 돌을 이용한 사냥을 하였습니다. 즉, 돌을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박물관을 가보면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을 시대순으로 진열해 놓는 것을 흔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물건은 대개 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도구는 바로 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던 나무, 동물의 뼈, 등과 같은 물건으로 사용하곤 했지만 본격적인 도구의 역할을 했었던 것은 그 중 단단한 돌이었습니다. 보통 돌을 도구로 사용했었던 시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입니다. 돌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거나, 단순하게 깨뜨리고 떼어내서 사용하였던 시기를 '구석기 시대' 라고 불리웁니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로는 '주먹도끼' 가 있습니다. 주먹도끼는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의 형태로, 먹잇감을 상징하는 짐승들을 사냥하였을 때나 털, 가죽을 분리할 때 쓰이곤 했습니다. 긁개는 사냥해 놓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손질하는데 사용했던 석기를 말합니다. 찍개는 나무를 베거나, 사냥할 때 사용했던 석기를 말합니다. 뚜르개는 구멍을 뚫거나, 옷감을 만들시 사용했던 석기를 말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돌을 이용하여 사냥을 하였던 시대였지만, 정작 삶의 방식은 어떠하였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보통 동물들의 습격이 오면 대항하기 위해서 3~10명 정도의 무리를 지어 다녔으며, 혼자 힘으로는 절대로 맹수들의 습격에 상대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돌과 뼈, 나무, 등의 도구를 이용하여 동물들을 사냥하거나, 들판의 열매와 뿌리를 채집하면서 먹고 살았다고 합니다. 어떨 때는 강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 먹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식량을 찾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이어갔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이나 강가와 같은 곳에 막집을 짓고 살아갔다고 합니다. 특히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오늘날의 우두머리가 있을 법한데, 특별히 우두머리는 없었고 대신 나이가 많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무리를 이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보다 이 시기의 있었던 제일 자연스러운 것들은 바로, 이 시대는 신분의 차별이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본받아야 할 점으로 보이는데, 아무래도 시대가 변하면서 신분의 차이가 생겨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쨋든 이 시대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었고, 그로인해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은 무리를 지어 살면서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사냥, 채집 생활을 하였고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을 지어 살았다고 합니다. 이쯤되면 구석기 시대의 이루어졌던 유적들은 어디에 분포하고 밀집되었는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는 약 7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은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와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 등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찾은 유적지에서 구석기의 유물이 발견되고, 발견된 유물에서는 그 시대,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는 큰 강 유역이나 바닷가 근처에서 아주 커다란 조개더미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사용했었던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조개더미에서 나온 물건들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조개더미에서는 돌로 만들어진 도구, 흙으로 빚어진 그릇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돌로 만든 도구는 구석기 시대의 것과 조금 다른 새로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이전보다 지능이 더 발달하게 되면서 돌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 돌을 갈아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의 돌을 갈아서 만들어진 도구를 '간석기' 라고 합니다. 더욱 날카롭고 정교한 모습을 띈 새로운 도구 덕분에 사람들은 먹이를 더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고 손질도 더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토기를 만들어서 음식을 그 안에 저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 중에서 사람들이 살았었던 움집을 볼 수가 있는데, 움집을 다시 복원하여 작게는 2~3명, 크게는 6~8명 정도가 살 수 있게끔 만들어진 주거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화덕자리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땐 신석기 시대에서는 본격적으로 불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음식을 요리하거나 보관하기 위해서 흙으로 그릇을 만들었고, 뼈바늘을 이용해 옷도 지어 입었으며, 조개 껍데기로 장신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서의 가장 큰 변화를 말하자면 바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집을 짓고 농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처럼 식량을 구하기 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이제부터는 같은 핏줄을 가진 씨족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을 이루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부족' 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또한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오늘날 인간 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해와 달, 산, 강, 동물, 등 영혼이 깃들여 있다고 믿었고, 특정 동물들을 자기 부족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며 숭배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신앙을 바탕으로 다른 예술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발전된 모습을 처음부터 말하자면 간석기를 제작하였고, 토기 제작, 그 후로 농사를 지으며 사냥과 어로를 손쉽게 구하고, 움집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핏줄, 혈연 중심의 부족 사회를 이루었고, 자연적인 현상과 자연물을 믿는 신앙이 발달되고,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무당, 또는 그 주술을 믿고, 자신들의 부족을 특정된 동식물과 연결지어 믿는 신앙이 발달되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사람들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흐르고 있던 용암들이 굳게 되면 아주 단단한 현무암이 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현무암 속에서 구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구리의 성분에는 주석, 아연을 섞게 되면 그게 바로 청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청동을 뜨겁게 녹인 후, 자신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거푸집에 붓고 딱딱한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기다렸다가 겉의 거푸집을 떼어내기만 하면 여러가지의 모양을 띄우는 청동기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돌을 깨뜨려 다듬고 쓰이는 것보다 시간,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뜨거운 불에 녹이기 위해서는 불의 온도를 높이는 기술이 필요하였고, 거푸집을 만들어 모양을 내는 일에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청동기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아무나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청동검처럼 돌로 만들어진 무기보다 훨씬 날카로우면서 강력한 청동 무기를 가질 수 있었던 사람은 그만큼 힘을 인정받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구석기 시대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으로, 무리의 우두머리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청동기 시대의 들어서면 이전의 평등한 사회는 끝이 나고 신분에 따라서 차별이 생기는 '계급 사회' 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청동기 시대는 농사가 발달되면서 생산량도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남은 식량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모두 차지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계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차별 대우를 받으며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사회로 변해갔습니다. 아주 거대한 고인돌을 보면서 당시 지배 계급의 권위,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농사는 권위와 권력이 상관없이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신분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함께 즐기면서 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차츰 보이기 시작한 생산수단이 발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계급 사회가 생기면서 신분 차이를 느꼈던 것입니다.



철기 시대는 기원전 4세기가 되면서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새로운 도구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게 바로 철기를 뜻합니다. 철은 청동기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쓸모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철로 여러가지의 도구들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청동기는 주로 장식, 제사,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만 쓰여져서 실용성이 다소 떨어졌었습니다. 하지만 철기는 생활 도구와 무기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농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그 덕에 철기 시대에는 농업과 수공업, 상업이 발전하였으며, 외국과의 무역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옛날 유적을 보면 중국 화폐가 발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중국 간에 서로 교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철기 시대의 사람들은 이전 시대보다 생활이 훨씬 수월해졌으며, 소위 말하는 부자들은 집에 곡식 창고까지 따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다고 합니다. 철로 만들어진 강력한 무기를 이용하여 전쟁 또한 빈번하게 일어났고, 만주와 한반도에는 강력한 힘을 습득한 국가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흙으로 모양을 빗대어 만들었지만 이 시기에는 토기를 만드는 기술도 더 발달하였습니다. 뜨거운 불에 구워 만들어졌기 때문에 잘 깨지지 않고 실용성이 있는 토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철기 시대가 되면서 거대한 고인돌은 더이상 만들지 않았고, 시체를 묻을 수 있는 널무덤, 관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독무덤과 같은 무덤 형태로 점차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토기를 제작한 것은 민무늬 토기, 붉은 간토기, 덧띠 토기, 등이 있습니다. 또한 철기 시대부터 무덤의 형태를 볼 수 있습니다. 널무덤과 독무덤입니다. 이렇게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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