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고소한 아이가 안겨주는 충격과 감동...새 영화 '가버나움'

열두 살이나 됐을까. 어린 소년이 수갑을 차고 재판을 받습니다. 그 모습만도 충격적인데, 알고 보니 소년은 형사사건의 피의자일 뿐 아니라 친부모를 고소한 고발인입니다. 도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24일 개봉하는 '가버나움'은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힘이 뚜렷한 영화입니다. 왜 세상에 낳아 제대로 돌보지 않냐며 아이가 부모를 고발한다는 충격적 설정, 현재의 재판 장면과 과거 이야기를 오가며 궁금증을 부추기는 전개 때문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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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여성 감독 칸영화제 수상작

길거리 캐스팅된 난민 소년이 주연

연기인 듯 실제인 듯 빠져드는 연기

가난하고 학대를 받는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또 전쟁 난민이나 불법체류자가 된 어른과 아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매우 생생한 묘사가 강렬한 흡입력을 발휘합니다. 스크린에서나마 이를 지켜보는 건 고통스러운 체험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내할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가장 큰 이유라면, 주인공 소년 자인 때문인데요.

가난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하죠.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자인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대신 동생들과 길에서 주스를 팔고, 동네 가게에서 배달 일을 하고, 또 가족에게 돈벌이가 되는 무언가를 합니다. 이러한 생활에 필요한 거짓말 솜씨와 당찬 기질도 적절히 갖추었습니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닙니다.

아니, 그 이상입니다. 여동생 사하르가 첫 생리를 하자 부모가 강제로 결혼을 시킬까 봐 곧바로 뒷감당에 나서는 지인, 가출한 뒤 우연히 만나서 함께 살게 된 젊은 여성 라헬이 갑자기 집에 돌아오지 않자 어떻게든 라헬의 아기를 배곯이지 않으려는 자인을 보고 있으면 이 소년에게 빠져들어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아이죠. 맹랑하고도 순진한 자인의 힘만으로 이 모든 상황에 직접 맞서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자인의 분투는 다른 방식으로 울림을 낳습니다.

이 영화는 아이들을 가난과 학대에 내모는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나 매우 복잡한 국제 정세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어린 자인의 눈높이와 발걸음을 따라 지금 벌어지는 일을, 하는 행동을 차근차근 펼치는 것이죠.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돌덩이가 얹히는 듯한 먹먹함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뭉클함을 불러냅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베이루트만 아니라 지구촌 어디서라도 벌어질 법한, 누구라도 공감할 법한 이야기처럼 보여집니다.

자인을 연기한 자인 알 라피아는 원래 배우가 아니라,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년입니다.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다 영화에 캐스팅이 되었는데요. 심금을 울리는 연기가 더욱 놀랍게 보이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제작진은 극 중 인물과 다를 바가 없는 처지인 사람들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아기 엄마 라힐을 연기한 여성도 영화에서처럼 불법체류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 촬영 도중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젖먹이 요나스 역할의 아기 역시 부모가 불법체류자인데요. 아기의 연기 아닌 연기가 천진하고 깜찍합니다. 자인의 여동생 사하르를 연기한 소녀 역시 거리에서 껌을 팔다 캐스팅되었습니다.

비전문인 배우들로 이런 강렬한 영화를 만든 나딘 라바키는 레바논 여성 감독입니다. 레바논 여성들의 유쾌한 로맨스를 그린 '캬라멜'(2007)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인 장편영화입니다. 4년간의 사전조사를 거쳐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습니다. 2시간짜리 완성본에 앞서 촬영 분량이 무려 500시간이라고 합니다. 아역들에 대사를 달달 외우게 해 연기를 뽑아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감정들을 이끌어내고 포착하는데에 많은 공을 들였다는 얘기입니다.

가버나움은 성경에 나오는 도시 이름입니다. 예수가 여기서 여러 차례의 기적을 행했건만 이곳 사람들은 믿지도, 회개하지도 않았다니 축복받았을 리 없는 도시입니다. 이후로 가버니움은 혼돈(chaos)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고 합니다. 자인이 사는 지독한 혼돈의 도시에서 기적이 생긴다면, 그건 자인 같은 아이 덕분일 것입니다. 지난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