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맞아. 내가 죽였어.
내가 그녀를 죽였어.
에일린은 아무 죄가 없어.
그냥 나는 내 죗값을 치르고 싶었어.
에일린은 그런 나를 이해못하겠지.
시간이 고요해지면서 정적이 흘렀다.
그제서야 이 일기장이 내게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에일린의 사체는 우리집 아래..
이곳이 바로 그녀의 무덤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술을 마신 나는
어디론가 향했다. 어느새 에일린이 일하는 곳
에 닿았다. 에일린은 플로리스트다.
["늘 꽃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직업이지.
에일린은 꽃으로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자체로만으로도 너무 아름다워서 늘
파리들이 득실거렸지."]
그곳을 가면 술이 취했던 나도 어느새
꽃향기에 취해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그럼 그녀가 방해되지 않도록
늘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천사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다른 남자와 손을
깍지 낀 채로 데이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에일린에게 다가가 이 남자는 누구냐며
물밀듯이 따졌다.
그러자 에일린은 ["우리 오빠예요.
친오빠."]
["거짓말 하지마! 친오빠랑 어떻게 손을
깍지 낀 채로 길거리를 돌아다니지?"]
["맞아요. 우린 남매예요. 거짓말 아니예요."]
어이없는 상황이었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서 더이상 이야기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에일린을 미행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 같이있던 놈이 이젠
누가봐도 연인처럼 둘은 매우 사랑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상처주기 싫어 나는 모른체하고
뒤 돌아섰다.
그런데 에일린이 나를 부르며 할 말이
있다고 손짓했다.
["당신..정말 미안해요. 나는 바람필 생각
까진 없었는데 아무래도 외로웠나봐요.
당신이 좋아서 연인이 되었지만,
늘 혼자였던 것 같아요. 미안하지만
우리 이제 그만 끝내요."]
["에일린, 당신을 야속해하지 않을게.
그리고 외롭게해서 정말 미안했어.
그런데 우리 마지막 여행..가지 않을래?"]
["마지막 여행..이요?"]
["그래..우리 이별 여행을 하자"]
[둘이 이별 여행을 떠났단 말이지..
기억이 나는 것 같군.]
머릿속에서 그때의 장면들이
지나가면서 마치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듯 내 일처럼 몰입했다.
산으로 간 우리는 정말 남남처럼
어색해진 분위기를 안고 침묵을
유지했다. 그간 그녀에게 외로움을 안겨준
나로선 할 말이 없었고, 단지 미안함만
밀려왔다. 그런데 왜 그녀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에일린에게 물었다.
왜 거짓말을 했냐고.
에일린은 표정이 굳어진 채 나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도 나에게 거짓말을 했잖아요."]
["무슨 거짓말?"]
["당신...사진작가가 아니라면서요. 나..
다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당신을 사랑해
보려 노력했지만 당신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어요. 외로웠던 그때, 당신의 모습에선
찾아볼 수 없던 따뜻함이 그에게서 느껴졌어요.
그래서 거짓말했어요. 나를 외롭게 한 죗값이죠."]
["뭐..뭐라고? 아니 그럼 나는 너한테 대체
어떤 존재였니? 난 너를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무슨 죗값을 치르라는거야!!"]
["밀지 말아요! 여기 낭떠러지예요. 이러다
떨어지겠어요.."]
나는 미안함과 동시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는 나에게서 떨어져도 좋지만,
이 배신감을 안고 살아갈 내 인생이
너무나 불쌍했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에일린을 죽이기로.
이 일기장의 주인은 제정신이 아닌듯하다.
사랑하는 그녀를 보내주진 못할망정
죽이기나 하다니..천하의 나쁜놈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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