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다 일제의 모진 고문을 당한 유관순 열사. 그는 옥중에서 손톱과 발톱을 뽑히는 등 매우 잔혹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심지어 '성' 고문이 이뤄지는 동안에도, 그리고 18살 어린 나이에 눈을 감는 순간에도 오로지 독립만을 생각했다.
영원한 청춘 유관순 열사
1919년 4월에 체포 5년형을 선고 받았다. "내가 왜 죄인이냐? 내 나라 내땅에서 만세를 부른것이 왜 죄가 되느냐?" 하며 항소를 하셨다. 그해 6월에 항소하여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1920년 특별사면으로 형이 절반으로 줄었다. 정확히 1년 6개월만 그 어둡고 차디 찬 지하 감옥에서 버티기만 하면 됬었다. 4월 1일 체포되어 7월 4일 재판을 받기까지 3개월 남짓 소요.
출소일이 1920년 9월 30일이었는데, 출소 이틀을 남기고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운명하시게 된다. 단 이틀만 견디셨으면 밝은 빛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이틀을 견디지 못하시고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으셨다. 너무 가슴아픈 이야기이다.
유관순 열사는 고문을 당해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독립 의지를 표출했다.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 함께 갇힌 여성독립투사 7인이 그 뜻을 함께하였다.
1919년, 그들은 차디찬 방바닥에 꼿꼿이 서서 외쳤다. 길지 않은 노래지만 가사 속에 하나하나 아픔이 전해지기도 하고, 강인함도 담겨있는 듯하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굉장히 누추했던 일본이 준 수감복 '일복'을 입고 차디찬 바닥에 앉아서 눈물을 머금고 악이 담긴 목소리로 외쳤을 이 가사.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시원찮은 밥 따위를 던져주며 정신적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핍박을 받던 그 시절, 마디마디마다 절절함이 느껴지는 구절들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노랫말에는 나라를 위해 흔들림 없는 투쟁 의지를 보여준 그들의 외침과 절규에 찬 목소리가 녹아들어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음침한 서대문형무소에서 진짜 두려움에 떨었을 사람들은 일본 간수들이었을 것이라고. 7인의 여성독립투사들은 감옥에서도 '그들'보다 강했다고.
잊지 못할 그들의 이름은 바로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그리고 유관순이다.
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느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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